잊지 않기 위한 일상 -여행일지
QWER 앨범을 연 순간 난 한마리의 고릴라가 되었다. 본문
실제 사람이 우효-! 소리를 낼 줄 몰랐다.
그게 나였다.
오늘 열 앨범은 미니 1집 앨범 'MANITO'이다.
일단 겉표지는 합격. 여는 방법이 조금 독특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그리고 펼치자마자 보이는 스쿨 걸스밴드
여기서부터 고비였다. 너무 찰떡같이 잘 어울려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누가 교복입히고 학교에서 화보촬영했어. 당신이 노벨상 감이야. 당신때문에 출판업계가 뒤집혀서 밤샘 근무를 하면서도 행복감에 젖어 야근하는 일개미가 생긴다고. 그 일개미가 바로 나야. 당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출판업계와 서점의 빛과 소금입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쓰러질 수 없다. 이를 악물고 포토북과 굿즈를 꺼냈다. QWER의 청량청순청초한 포카를 보는 순간 다시 집어넣었다. 더 이상 속세의 때를 타게 할 수 없다. 오늘 다이소에서 구매한 포카 보관용 앨범에 넣어두었다.
포토북을 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쳐버리도록 아름다운 사진을 뒤로 하고 덜덜 떠는 손끝으로 포토북을 열었다.
앞으로 앨범은 하루에 하나씩만 개봉해야 겠다. 심력 소모가 장난 아니다. 기진맥진해져서 자리를 보전하고 드러누웠다. 이런 나약해빠진 마음가짐으로 제대로 영접할 수 없다. 심장이 진정하라고 외치고 있다. 워치에서 걸린 내 심박수는 120 이상. 격하게 달리기를 해야 나올 수 있는 숫자다. 재생해둔 QWER 플레이리스트를 껐다. 이 이상 공급 과다는 심장에 위험하다.
미뤄두었던 주방청소를 끝내고 돌아와 다시 포토북을 펼쳤다.
고등학교 다닐적에 쉬는 시간은 10분이였다. 그 정도면 지하1층에 있는 매점에서 과자와 빵(당시엔 원피스 빵이였다), 음료수(피크닉사과맛)을 사와서 5층 교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나눠먹기 충분한 시간이였다. 매일매일 하루 열시간 이상 마주하는 친구들인데 이야깃거리는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왜 갑자기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냐고?
과도한 청춘은 사람의 뇌를 과거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눈부신 형광등을 바라보면서 과거회상을 마친 난 다시 일어나 세번째로 포토북을 펼쳤다.
어릴때 본 검정 고무신이 떠올랐다. 감기에 걸린 기영이가 먹고 싶었던 바나나. 너무나도 간절하고 먹고 싶은 바나나. 나는 그 바나나를 보며 우효오 외치면서 드러밍을 하는데 막상 아까워서 먹지 못하는 한마리의 고릴라. 인간의 언어를 잃고 우가우가 외치는 유인원..
사람이 너무 좋으면 '우효'라는 감탄사를 진짜로 사용한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이였다.
포토북을 세번 열었는데 아직까지 세세하게 정독을 못했다. 일단 과하게 아름다웠고 소중한 추억이 아른거렸으며 아련하고 어지러울 만큼 눈부셨단 건 기억난다.
포토카드를 정리하자. 이번 앨범부터 랜덤으로 굿즈가 들어있구나. 편지는 쵸단님, 증명사진은 마젠타, 학생증은 시연님이다. CD와 네컷사진은 히나님이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 히나님은 뭘 믿고 이렇게 잘 큰건지 이해가 안 간다.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날개잃은 천사인줄 알았는데 한번 웃을때마다 등뒤로 날개가 펼쳐지는 걸 보니 그냥 천사였다. 귀여움이 대기원을 넘어 우주를 뚫고 천원돌파 그렌라간하고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상큼함이 철철 흘러넘치시는데 부모님께서 용케 세상에 얼굴을 공개하는 걸 허락하셨구나. 매우 감사합니다. 히나님 미모는 국보급이고 애교를 부리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정말 도를 지나쳐 레를 넘어 미쳤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네번째만에 난 포토북을 끝까지 넘길 수 있었다. 중간중간 고비가 몇번 왔지만 이번엔 정말 꽉 붙잡었다.
내일 홍대에 있는 QWER 1주년 팬까페를 방문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홍대에서만 3곳이 열리길레 셋 다 가려면 좀 열심히 돌아야 겠다 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던 찰나, 아이돌 팬 경력 8년차 선배가 말했다. 공식이 아닌 팬까페라도 사람이 많아서 입장조차 못할 수 있다고. 특히 QWER은 요즘 인기가 매우 좋으니 경쟁이 치열할거라 했다.
음료수 한잔 사고, 포카 한장 얻고 까페 사진 찍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였을까? 이런 행사를 참여해본 적 없으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업계 선배의 충고는 잘 들어야 한다.
각오를 다지며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 포토북을 덮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정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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