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WER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

QWER 앨범이 분홍색이라고? 그럼 내 취향을 바꿔야지. 그런데 변기는...?

dian11 2024. 10. 17. 04:35

난 어렸을 때부터 분홍색이 싫었다. 
왼손에 흑염룡이 봉인되어 있다고 외치던 사춘기 이전부터 분홍색, 빨간색 옷을 보면 질색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강렬하고 알록달록한 색이 싫다. 좀 예민할 때는 빨간색은 바라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워서 눈을 피할만큼 붉은색, 분홍색 계통은 내게 쥐약이었다. 
 
그런데 QWER 앨범이 분홍색이라고? 아 그러면 내 취향이 문제다. 바꾸자. 
 


이틀동안 기도 올리던 앨범이 왔다. 구매 사이트에서 개봉하는 영상을 찍어야 불량품을 바꿔준다고 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구성품을 모르니 빠져도 잘 모를거고, 어차피 완전히 신상품일 거란 생각은 안 한다. 조금 더 귀하게 여길거면 마음을 달리 먹었겠지만 지금 산 앨범은 막 소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구매했던 앨범을 너무 귀이 여기다 책상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채 몇년 뒤 발견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며 소비하는게 나을 거다. 앨범이 뛰어나게 마음에 들면 보존용으로 하나 더 주문하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열였다. 
포토북, CD, 포토카드와 포스터와 개별 사진이 담긴 박스 
 
 


 
확인을 위해 포토북을 들어 한번 넘겨봤다. 좋은 얼굴이다. 일단 멈추지 않고 쭉 넘겨보고 책을 내려놓았다. 마음을 가라앉혀둔다. 역시 QWER 사진은 파급력이 크다. 한번 확인하는데 이렇게까지 심력을 소모하게 한다. 
 
모든 멤버 한명한명 전부 솜사탕 왕국 핑크 요정처럼 깜찍하게 귀여운데 마젠타님이 좀더 돋보였다. 상징색을 분홍색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다. 화사한 얼굴에 분홍색이 잘 어우러져 본연의 매력을 다섯배는 뻥튀기하셔서 원래 가지고 있던 여신미에 큐티깜찍까지 더해서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앨범 이름이 하모니인 이유를 단 한명이서 증명하고 계신다. 기타 잡고 아련하게 있는 포즈에서 거울상까지 완벽하게 비춰서 완성도가 기막혔다. 학과가 시각디자인과라고 하지 않으셨나? 모델 학과 나오신거 같다. 포즈랑 표정이랑 합이 아주 눈을 정화시켜줘서 시력을 올려주신다. 
지금까지 여신미모 마젠타님이라 생각했는데 정정하겠다. 탈 여신급 미모를 가지셨다.  
 
 
진정할겸 포토 카드를 확인했다. 역시 우리 멤버들 최고로 귀엽고 예쁘,,,어?




혹시 이 사진은 시연님인가? 카드 뒷면 상징색이 시연님이다. 조금 어지러워져서 닫았다. 마음이 안정되면 다시 봐야 겠다. 
 
단체 포스터. 그래 이걸 손에 넣고 싶었다. 이번 앨범 컨셉은 깜찍일까? 레이스와 잠옷을 섞은 디자인인데 귀엽고 몽글몽글한 컨셉인 듯 했다. 만화 페이지가 한장 들어있는데 이건 아직 의미를 모르니 그냥 한구석에 곱게 모아뒀다. 
 
포토북을 두번째로 열어봤다.
지금 보니 의상이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 멤버 얼굴만 들여보느라 눈치 채지 못했다. 분홍빛 감도는 레이스라니. 내 취향을 이리 벗어나는 컨셉을 잡았다. 그래도 문제 없다. 모든 옷을 찰떡같이 다 소화하는 QWER 이라 어떤 옷이든 최고로 이쁘니까 내 취향쯤은 곱게 접어 언덕위로 날려보내자. 얼굴이 패션의 완성인데 시작부터 120% 완벽도로 시작하는 QWER에게 장애물은 없다. 
 
마음을 정리하고 포토카드를 개인앨범에 넣었다. 조금 정리되면 적절한 곳에 재배치할 예정이다


포토북을 세번째로 열었다. 
이제서야 난 배경이 화장실이란 걸 알았다. QWER은 최고라며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자장가로 삼았던 나로썬 조금 상상밖이라 좀 놀랬었다.
소화하기 좀 힘든 컨셉이다. 아니 이런 완벽한 얼굴과 찰떡같은 몸매를 두고 화장실에서 분홍색 레이스 잠옷 엇비슷한 걸 입혀놓고 찍었다고? 변기에 앉아서 기타를 들었다고? 단체 포스터를 보니 같은 장소에서 찍었다. 이번 앨범은 전부 같은 장소에서 찍었구나. 
 




앨범에 대해 식견이 짧은 나는 화장실이란 난해한 컨셉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상하다. 그동안 본 다른 밴드 앨범에선 거리를 풍경으로 하거나,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방에서 포즈 잡고 찍었는데. 가끔 구매했던 다른 아이돌 앨범을 떠올려보니 과연 화장실은 없었다. 유튜브에서 본 가장 첫번째 티져 영상1,2,3에 나온 초원 한복판이나 4에 나온 건물 옥상, 별의 하모니 회전목마 앞을 예상했던 나는 다시금 고민했다. 별의하모니 처럼 아련하고 희망찬 분위기의 배경이나 Discord처럼 상큼 발랄 열정 가득한 배경이 아니라 분홍색 조명 화장실 변기 앞. 앨범이 분홍색인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했는데,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동안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포토북의 배경사진 때문에 멤버들 미모를 잊다니.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변기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하다못해 분홍색 변기였다면 앨범 분위기와 어울렸다고 납득했을듯 한데 흰색 변기다. 
 
QWER이 프로젝트 그룹이니 1집 앨범을 만들때 실험적인 요소를 도입했던 걸까? 앨범 촬영비하인드 영상을 안 봤나? 내 배움이 아직 짧은 듯 하다. 나중에 앨범 제작 총감독의 견해를 찾아봐야겠다.
 
 
일단 다른 앨범은 내일 개봉해야 겠다. 오늘은 좀 고찰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