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WER은 좋다. 아주 좋다.
원래 밴드 음악을 좋아했다.
국내 아이돌 밴드만. 그것도 딱 좋아하는 선에서만 끝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좋아하는 그룹의, 좋아하는 곡이 많이 포함된 앨범만 골라서 딱 하나만 사고 CD를 굽고 나머지는 팽개쳐버렸다.
원래 사람 얼굴과 이름을 못 외웠다.
보컬, 일명 프론트맨조차 모른다. 얼굴도 못 외운다.
FTISLND는 홍기를 좋아한다. 딱 그게 끝이였다. 다른 멤버 이름도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최근 곡은 듣지도 않았다
N.Flying 노래를 좋아한다. 옥탑방은 당연하고 폭망이나, moon shot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보컬이 두명이란거 말곤 아무것도 모른다.
Onewe. 여기는 더 심각하다. 천체 관련된 노래를 엄청 좋아해서 서점을 발품 팔아가며 앨범을 여러장 샀지만 끝끝내 인원이 몇명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QWER이란.
참 기가 찬다. 그토록 관심없던 내가 멤버 이름과 얼굴을 3일만에 외웠다. 아참, 생일까지도.
아이돌판이나 음악계와 거리가 먼 내게도 Discord와 고민중독이 대박쳤다고는 간간히 들려왔다. 스트리머 출신이 모인 밴드란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정도였다.
노래 좋은데? 대학축제에 많이 공연한다고? 겨우 그정도였다.
평소처럼 알고리즘 인도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었을때였다. 싸이 관련 영상을 보다가, 싸이 대학축제 영상으로 넘어가서 QWER 대학축제로 이동했을 때다. 댓글에 시연이의 간절함이 이 밴드를 이끌었고 적혀있었다.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메인보컬 이시연님 이력이 너무 화려했다.
그래서 읽다보니 QWER이 프로젝트 그룹이였단 걸 알게 됐다. 조금 더 흥미가 생긴 상태로 유튜브로 다시 돌아왔다.
쵸단의 고대 직캠 쇼츠가 있었다. 쵸단님이 드럼을 치는 분이라고? (떳다떳다 비행기도 못치지만) 나도 드럼 배워봤는데.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쵸단님의 채널에 들어갔다. 내가 예전에 충동구매로로 샀다가 먼지만 쌓이는 드럼패드를 사서 치는 영상이 있다. 와. 공감요소가 쑥 올라온다. 심지어 복싱했던 분이시란다. 다이어트 복싱만 몇번 깔짝여봤던 터라 존경심이 들었다.
난 그렇게 QWER 공식계정으로 넘어가 가장 오래된 영상부터 재생했다.
3일이 흘렀다.
난 이제 앨범은 살거지만 굿즈는 살까말까 고민하는 입덕 부정기에 도달했다.
시연이 춤이 귀여워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따라하겠단 생각은 했지만 네이버나 공식계정에선 굿즈를 팔지 않았고(한~참전에 팝업스토어를 했단다. 통탄할 노릇이다) 어디 옷 브랜드와 협찬해서 낸 굿즈라 고민됐다.
내가 과연 이 협찬 굿즈를 사고 후회하지 않을까? 디자인이 그리 취향은 아니고, 가격도 비싼데.
몇시간 사이트만 들락날락 하다, 차라리 실물을 한번 보고 결정하는게 낫단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입덕했단 걸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12시간 뒤 내 다리는 무사했을 거다.
아무튼 멤버 실물을 보고 싶어 검색해보니 딱 그날 허준 축제에 축하공연을 나온다고 했다. 허준 축제, 난생 처음 듣는 축제에 올드 해보이는 느낌이 오히려 좋았다. 사람이 많이 없겠다. 멀리서나마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좋다. 가자.
그러나 내 결심은 이미 많이 늦었었다.
도착한 순간 눈앞에 가득찬 인파에 잘못 판단 했단 걸 깨달았다.
사람이 많아 공연 2시간 전부터 좌석은 아예 접근 불가였다. 에라 모르겠다. 펜스에 붙어서 기다리자.
그리고 서서 기다린 지 30분만에 한계가 왔다. 끔찍했다.
발바닥에 피가 안 통했고 허리가 쑤시고 다리가 마비됐다. 사람이 많아서 가을날씨에 땀이 다 났다. 그러나 돌아가겠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텼다. 앞의 공연이 1시간, 무대 세팅만 30분. 그렇게 3시간 30분간의 기다림 끝에 QWER이 왔다.
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잊었다.
펜스라 핸드폰을 최대한 줌을 땡겨봐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저 다음폰은 갤럭시 울트라로 바꾸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도 큰 화면에 떠오른 멤버 얼굴과 무대에 서 있는 구도는 보였다.

옷소매를 말아쥐었다. 입을 막았다. 옷자락을 잡아쥐었다. 입을 가렸다. 가방 끈을 세게 쥐었다.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그냥 보기만 해도 모든게 벅찼다.
유튜브 영상은 화질이 엄청 구리다. 실제 목소리가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다. 화면에 클로즈업된 얼굴이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고 깜찍하다. 연주? 기가 막히다. 쵸단님이 마이크 쥐고 말할때 목소리가 너무 귀엽고 클로즈업된 얼굴이 더 귀여웠다. 파워풀하게 드럼 칠때마다 가슴이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마젠타님이 턴을 돌자 내 머리도 같이 돌뻔 했다. 역시 퍼포먼스와 팬서비스가 장절하구나. 히나가 고양이귀를 하고 있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우리 왕큰 아기 고양이. 시연이가 라이브 하지 않고 립싱크했기를 바랬다. 네 목이 상하기라도 하면 그건 지구전체의 손실이니까 매일매일 축제 돌면서 성대 혹사 시키지 말고 그냥 쉬렴.


보면서 이리 훌륭한 공연을 하다니 뭉클하고, 지난 3일간 봤던 영상과 대조해서 훨씬 발전한 점에 감동받고, 혼자 함성도 못지르고 입만 틀어막은채 전율했다.
노래가 끝나고 멤버들이 퇴장할때,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이미 3시간전부터 한계였는데 피가 안 통했다. 절름거리며 공연장을 빠져나온 뒤.
팬까페 가입하고 협업 굿즈를 샀다. QWER은 최고야.